21년간 완벽한 찐따였다 페이스북 팔로워 7명이 전부였던 내가 어쩌다 보니 SNS로 밥 벌어 먹고 산다. 그 첫 시작은 무작정 벌린 사업이었다.
벌렸다기도 민망한 수준의 창업이었다. 블로그 -> 노출 -> 크몽으로 이어지는 아주 간단한 방식. 당시 정말 아무것도 몰라서 유튜브, 네이버 카페 뒤져가며 어찌저찌 알았던 정보들로 운영했었다. 키워드가 1페이지 나오면 기분이 째지고, 순위가 밀리면 울적해지며 다음 글에 영혼을 담았다. 당시엔 남자 여자 연애 재회 같은 카테고리로 운영했었다. 그렇게 하다보니 늘어나는 일방문자와 함께 결제 문의도 증가했다.
하지만 이게 밥벌이가 되기엔 부족하더라. 지금의 근성이 당시에도 있었다면 취업이 아닌 레벨업을 노렸겠지만, 이땐 불안감에 압도당했나. 부랴부랴 이력서를 준비했다. 다만 전공(전직장)을 살린 분야가 아닌 실패한 마케팅을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블로그로 상품을 판매한 찐따 그자체의 초라한 이력을 넣었고 합격했다. 운이 좋았다.
첫 업무는 블로그마케팅이었다. 이때부터 세스고딘이나 뭐 해외 유명한 분들이 말하는 마케팅, 브랜딩과 전혀 다른 현실판을 마주한다. 내 키보드는 사람에 대한 고뇌 없이 그저 타이핑 하기 바빴다. 매일 2천자에 사진 10장, 영상 1개짜리 글 5개 쓰는게 주 업무였다. 그것도 써본적 없는 제품의 후기를, 돼본적 없는 육아맘의 글을 배설했다. 경쟁사는 고점에 올라갔을때 온갖 방법으로 끌어내리고 키워드를 만들어내고 점령했다. 이게 마케팅이 맞나...
이렇게 1년이 지나니 마케팅이 ㅈ밥같았다. 걍 계정 사거나 빌려서 글 쓰고 링크 걸어두는 짓만 반복해면 매출이 벌렸다. 노출되면 벌고 순위 내려가면 떨어진다. 누가 나보다 잘 벌면 더러운 편법들로 끌어내리면 됐다. 결국 그냥 돈쓰면 되는거잖아. 존나 싑네 ㅋㅋ 내가 이걸 몰라서 첫 사업을 실패했나? 허탈하기도 했다. 이 착각은 5개월만에 산산조각났다.
플랫폼에 기대는 마케팅은 오래가지 못했다. 흔히 다들 말하는 로직/ 알고리즘에 따라 노출량에 차이가 생기고 매출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광고를 안하면 아무도 찾지 않고, 광고를 하자니 경쟁은 심해진다. 더 과장하고 더 악랄하고 더 시기하고, 그렇게 시장이 더러워진다. 그 더러워진 판떼기에서 살아남는 자들은 더 큰 돈을 쓰는 사람이거나, 빠르게 노는 판을 바꾸는 사람이거나, 급류에 떠밀려 가라앉거나. 내 조직은 판을 바꾸는 선택을 했으나, 그간 쌓아온 후폭풍으로 수년째 가라앉았다.
그 시점에 시작한게 유튜브였다. 어디가서 쿠사리 먹고 싫은 소리 듣는걸 싫어한다. 그래서 유튜브를 해보자고 했을때 집에서 혼자 계정 하나를 같이 키웠다. 내 채널이 3주에 3천명을 달성했을때 접고, 회사 계정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오가닉 유입을 만들어 내는 경험을 한 것 같았다. 채널은 2개월 들어서니 1만명이 된다. 동시에 뷰티 채널도 했는데 영상 3개 쯤에 2천명이 되더라. 사람을 이해했다. 사람을 많이 모았다. 그들에게 판매했다. 팔린다. 신기했다.
대표한테 미안하지만 회사 매출이 몇배이상 오르건 뭐간 나한텐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병 걸린척 안해도 팔린다니, 여자인 척, 연구원인 척 글쓰지 않아도 된다는게 중요했다. 사람대 사람으로 판매할 수 있다는게 감사했다. 그렇게 유튜브에 이어서 인스타를 시작했다. 운영하는 대부분 채널은 3개월이면 1만명을 넘겼고, 상품링크로 하든, 쿠파스로 하든, 카톡방이든 트래픽을 원하는 곳으로 보낼수 있게 됐다. 스레드도 1만명 채널 2개, 대행 계정 수십개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이 계정까지 나름 잘 달려오는게 신기할 뿐이다.
사람 인생 어떻게 될지 모른다. 7년간 무역학도의 꿈을 꾸며 지내던 내가 1년 반만에 꿈의 직장을 퇴사하질 않나. 입사 전까지 블로그 말곤 아이디 조차 없던 내가 글쓰고 영상 만들며 교육을 다닌다. 블로그도 유튜브도 인스타도 모든 계정들이 내겐 배움의 놀이터였다. 이 스레드 역시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모두 글쓰자 찐따 개미들아ㅏㅏㅏ
아 그리고 난 여전히 마케팅이 어렵고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