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회피형 인간이다. 남들처럼 이력서, 자소서 쓰면서 수십 군데 넣고 면접보는 선택 대신 취업연계 프로그램으로 바로 들어갔다. 돈 빨리 벌고 싶었던 것도 있었고 무엇보다 귀찮았다. 그렇게 들어간 첫 직장에서 1년 넘게 오퍼레이터로 일하고 해외 업무 특성상 모니터링 할게 많아서 주말에도 일해야 됐다. 귀찮고 지겨워졌다.

유튜브에서 무자본 창업 영상을 봤고 퇴사하고 혼자 사업을 시작했다. 스마트스토어 위탁판매를 시작으로 서비스 판매도 해봤다. 첫 직장에서 배운거라곤 빠른 운임 계산과 응대 스킬이 전부인 내가 온라인 시장에서 상품화 할 수 있는건 없더라. 매출은 기대했던 몇천 수준도 안됐다. 그러다 마케팅 회사에 들어갔다. 이리저기 재면서 기다릴 시간도 아까웠다. 빨리 배우고 싶었고, 뭐가 부족했었나 복기하고 싶었다. 복지가 어쩌고 평이 저쩌고 하는 것들도 귀찮았다. 나중에서야 알고보니 잡플래닛 평점이 1점대였나. '출근 바로 가능하죠?' 네 가능해요.

두번째 직장인데 귀찮게 굴지 않아서 좋았다. 환경 자체가 블로그, 유튜브, 인스타, 스레드 등등 나만의 테스트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쇼핑몰 카테고리는 5개 이상에 제품군도 다양했다. 엠디 역할부터 제품 하나 매출을 담당해서 전체 다 굴려도 보고, 그러다 컨텐츠 마케팅 쪽으로 빠지기도 했으며, 교육업도 하게 됐다. 업무가 매번 바뀌면서 늘어나고 줄어들고 하는 것들이 만족스러웠다. 난 급여 상승보다 다이나믹한 환경변화가 더 좋았다. 그덕에 귀찮음 없이 오래 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특별히 용감했던 것도 아니고 사업가 기질이 넘쳤던 것도 아니다. 그냥 정면으로 부딪히는 게 귀찮아서 자꾸 옆길을 찾았던 것 같다. 태생 자체가 회피형인 것 같다. 근데 이상하게도 그 옆길을 계속 걷다 보니 남들이 안 보는 길에서 내가 잘하는 게 몇 개씩 보이기 시작했다. 돌아보니 이게 내 방식이었던 것 같다.

앞으로도 회피하며 살 것 같다. 정답을 몰라서 돌아간 길들이 지금의 나한테는 전부 데이터로 남아 있다. 그래서 지금도 정답부터 찾기보다는 일단 해보고 돌아간다. 돌아가도 남는 게 있으면 그것도 결국 내 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