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개미로 살고 싶다. 20대엔 도망치는 걸 자유라 착각했고, 30대가 되어서야 자유가 뭔지 알았다.

나는 200만 벌어도 행복하다 이 말을 하면 이상하게 볼 수도 있다. 사내새끼가 야망이 없다느니, 정신승리라느니. 근데 내가 원하는 건 몇백을 더 받고 말고 따위가 아니다. 선택할 수 있는 삶이다. 어릴 때부터 선택은 늘 내 것이 아니었다. 집도 형편이 정했고, 사는 방식도 형편이 정했다. 이사를 자주 다녔고, 할머니 손에서 자란 시간이 길었다. 어릴 땐 그게 자유가 없는 삶인지도 몰랐다. 그냥 원래 다 그런 줄 알았다.

20대엔 도피가 곧 자유인 줄 알았다. 시험보는게 지겹고 답답해 2~3년을 해외에만 나가있었다. 교환학생, 교내프로그램을 미친듯이 넣어가며 어떻게든 현실에서 도피했다. 이게 철부지 대학생인 내겐 자유였다. 졸업 후 돈을 벌었지만 시간은 남의 것이었고, 열심히 살았지만 내 이름으로 남은 건 별로 없었다. 한참을 지나서야 알았다. 내가 원한건 돈이 아니라 선택권이었다. 30대에 들어서야 자유를 다시 정의하게 됐다. 돈 걱정 없는 삶. 시간이 많은 삶.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삶. 다 맞는 말인데 끝까지 따라가 보면 하나로 귀결된다. 내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것. 그게 내가 생각하는 자유다.

나는 돈을 좋아한다. 아니 사랑한다. 하지만 돈 자체를 사랑하는 건 아니다. 돈이 늘려주는 건 사치가 아니라 선택지다. 싫은 일을 거절할 수 있고,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고, 쉬어갈 수도 있고, 다시 시작할 수도 있다. 돈은 자유가 아니라, 자유를 지켜주는 힘이다. 중요한건 돈의 크기가 아니다. 똑같이 200만원을 버는 두 사람이 있다. 한 명은 어쩔 수 없이 그 삶을 살고, 한 명은 더 벌 수도 있지만 스스로 그 삶을 선택했을 수도 있다. 통장에 찍히는건 같아도 인생은 전혀 다르다. 한 사람에겐 생존이고, 다른 사람에겐 자유니까.

나는 더 많은 돈을 벌 거다. 누구의 허락도, 누구의 눈치도 없이 내 삶을 내가 결정하기 위해서다. 돈이 목표가 아니다. 선택권이 목표다. 그래서 평생 개미처럼 살아도 괜찮다. 남이 시키는 개미가 아니라 내가 선택한 개미라면, 얼마든지 그렇게 살고 싶다. 어쩌면 나는 가난이 싫었던 게 아니라 남이 내 삶을 결정하는 게 싫었나보다.